사랑극장

여름, 물에 잠기다

소설 2016.11.02 11:18

 여름, 물에 잠기다.





















                                       






  아내가 계곡 아래서 큰소리로 몇 번이나 불렀음에도 나는 계속 딴청을 피웠다. 민박집 평상에 앉아 있던 나와 아내와의 거리는 불과 2~3m밖에 되지 않았다. 여느 때라면 충분히 들을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런데 물소리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물속에서 장난치는 아이들의 고함소리 때문이었는지 나는 아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지척에 있는 여자가 아내인지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하였다.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니 어떻게 보면 아내 같기도 했고 어떻게 보면 예전에 알던 여자 같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내가 평상에 앉아 술을 마신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곳에서 저만치 보이는 건너편 숲을 바라보기도 하고, 차가운 계곡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본 것뿐이었다.
  급기야 화가 난 아내가 팔소매를 걷어 부치고 내 앞에 왔을 때 나는 상황을 알아차렸다. 아내는 딸아이가 타고 놀 고무튜브를 가지러 온 것이다. 
  나는 이 모든 게 더위 탓이라 여겼다.
  최근 몇 십 년 만에 찾아온 재앙 같은 폭염에 나는 심신이 몹시 지쳐 있었다. 아까 운전을 해서 이곳에 올 때도 이런 경우가 있었다. 이곳까지 오는 길은 비록 구불거리기는 하나, 급격히 가파른 곳은 없었다. 그런데 목적지 방면인 좌측으로 방향을 바꾼 순간, 앞에 직선도로가 갑자기 땅 위로 솟아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당황한 나는 뒤차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만 급정거를 했다. 다행히 어느 정도 거리를 확보한 뒤차 운전사의 재치 때문에 사고는 나지 않았지만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뒷좌석에 타고 있던 아내와 딸아이가 놀란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무슨 일이에요?”
  “몰라! 갑자기 도로가 하늘로 치솟았어.”
   나는 아내의 말에 신경질적으로 되받았다.
  “아니! 한 두 번 가는 길도 아닌데 왜 그래요? 여기서부터는 계속 직선도로잖아. 당신 혹 아까 술 마셨어요?”
  시골로 귀촌한 후 아내는 늘 그런 식이었다. 내게 예기치 않은 상황이 일어날 때나, 가끔씩 부부싸움을 할 때면 그녀는 내가 가끔씩 마시는 술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 게 아냐! 오전 내내 하우스에서 일만 했는데 무슨 술?”


  지리산, 중산리 계곡에 밤이 깊어지자 주변은 마치 먹물을 뿌려놓은 듯 컴컴했다. 처서가 지나서 그런지 낮과는 달리 기온은 뚝 떨어졌다. 벌써 귀뚜라미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는 것으로 보아 가을이 머지않은 모양이었다. 어제 해질 무렵 만해도 풀을 벨 때 날 괴롭히던 모기들의 움직임도 둔해졌다. 그래서 속담에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고 했을까.
  아내와 딸아이가 잠자리에 든 뒤, 나는 모처럼 혼자 평상에 앉아 술을 마실 요량으로 배낭을 뒤졌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오는 길에 휴게소에 들러 아내 몰래 챙겨온 술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술이 없다니…. 나는 당황하여 평상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평상 밑에 빈 병이 두 개 있었다. 얼른 들어서 냄새를 맡아보니 알코올 냄새가 빠져나가지 않은 것으로 보아 누군가 금방 마신 것임에 분명했다. 그런데 그 평상에는 내가 쭉 있었으므로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술을 마신 자는 나밖에 없는 셈이었다.




작가 이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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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랑극장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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